사주는 태어난 연월일시를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옮긴 여덟 글자입니다. 그런데 이 여덟 글자를 막상 마주하면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 쉽습니다. 명리에서는 이 글자들을 읽는 데 크게 두 가지 시선을 둡니다. 하나는 글자 자체가 어떤 '재질'로 이루어졌는지 보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글자가 나(일간)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는 눈입니다. 앞의 눈이 오행(五行)이고, 뒤의 눈이 십신(十神)입니다. 같은 여덟 글자라도 이 두 시선을 함께 얹으면 한결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오행은 세상의 기운을 다섯 가지로 나눈 틀입니다.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이 다섯이 사주 여덟 글자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습니다. 각 기운은 고유한 성질을 지닙니다. 글자를 읽기 전에 그 글자가 어떤 재질인지부터 가늠하는 셈입니다.
| 오행 | 성질 | 이미지 |
|---|---|---|
| 목(木) | 뻗음·성장 | 위로 자라나는 나무, 시작하는 기운 |
| 화(火) | 발산·열정 | 타오르며 퍼지는 불, 드러내는 기운 |
| 토(土) | 중재·포용 | 모든 것을 품는 흙, 매개하는 기운 |
| 금(金) | 결단·수렴 | 다듬어 거두는 쇠, 맺는 기운 |
| 수(水) | 지혜·유연 |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적시는 기운 |
이 다섯 기운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 관계가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입니다.
상생(相生)은 서로 낳아 주며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목생화(木生火)로 나무가 불을 키우고, 화생토(火生土)로 불이 타고 남아 흙을 살찌우며, 토생금(土生金)으로 흙 속에서 쇠가 영글고, 금생수(金生水)로 쇠가 물을 머금어 내며, 수생목(水生木)으로 물이 다시 나무를 기릅니다. 이렇게 목·화·토·금·수가 둥글게 한 바퀴를 돌며 서로를 북돋웁니다.
상극(相剋)은 서로 눌러 주며 균형을 잡는 관계입니다. 목극토(木剋土)로 나무가 흙을 파고들고, 토극수(土剋水)로 흙이 물을 막으며, 수극화(水剋火)로 물이 불을 끄고, 화극금(火剋金)으로 불이 쇠를 녹이며, 금극목(金剋木)으로 쇠가 나무를 베어 냅니다. 누른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나친 기운을 다스려 전체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잡아 주는 작용입니다.
사주를 읽을 때 먼저 보는 것은 다섯 기운이 고르게 갖추어졌는지, 아니면 한쪽으로 치우쳤는지입니다. 어떤 사주는 목(木)과 화(火)가 가득해 뻗고 드러내는 힘이 강하고, 어떤 사주는 금(金)과 수(水)가 많아 거두고 가라앉히는 기운이 두드러집니다. 어느 한 기운이 지나치게 넘치면 그 성질이 과해지기 쉽고, 반대로 어떤 기운이 모자라면 그 자리가 비어 보완이 필요해집니다. 명리에서 한 사람의 성향과 기운의 강약을 가늠하는 첫 단추가 바로 이 분포를 살피는 일입니다. 넘치는 것은 덜어 내고 모자란 것은 채우려는 시선, 이것이 오행으로 사주를 읽는 기본 태도입니다.
오행이 글자의 재질을 본다면, 십신(十神)은 그 글자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를 봅니다. 여기서 '나'는 태어난 날의 천간, 곧 일간(日干)입니다. 일간을 기준에 두고 다른 글자가 나를 돕는지, 내가 낳는지, 내가 누르는지, 나를 누르는지를 따져 열 가지 관계로 나눈 것이 십신입니다. 이 열 가지는 앞서 본 오행의 생극(生剋) 관계에 음양(陰陽)의 같고 다름을 더해 정해집니다.
열 가지는 성질이 비슷한 것끼리 다섯 묶음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다섯 갈래만 익혀도 충분합니다.
각 묶음이 다시 음양에 따라 둘로 갈라져 모두 열 가지가 되는데, 그 하나하나의 이름과 성격은 따로 마련한 글(십신 열 가지)에서 자세히 풀어 두었습니다. 여기서는 일간을 중심에 두고 관계를 읽는다는 큰 틀만 잡아 두면 됩니다.
오행과 십신은 같은 글자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오행은 '무엇이 많고 무엇이 적은가', 곧 재질과 분포를 봅니다. 십신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역할인가', 곧 관계를 봅니다. 예를 들어 사주에 화(火)가 많다는 것은 오행의 눈으로 본 분포입니다. 그런데 그 화(火)가 일간에게 식상(食傷)이라면 표현과 활동으로 쓰이는 힘이 되고, 재성(財星)이라면 결실로 향하는 힘이 됩니다. 같은 글자라도 두 눈을 겹쳐 보면 '무엇이 있는가'를 넘어 '그것이 나에게 무엇이 되는가'까지 읽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분포와 관계를 함께 헤아릴 때 비로소 여덟 글자가 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납니다.